[김서정의 숲속 인생 산책] 고치기와 경기도 안성 서운산자연휴양림 미국가막사리
[김서정의 숲속 인생 산책] - 고치기와 경기도 안성 서운산자연휴양림 미국가막사리 - 오피니언
[김서정=숲해설가 겸 작가] 작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나요?”일 것이다. 나도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대답은 이렇게 한다.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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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의 숲속 인생 산책] 고치기와 경기도 안성 서운산자연휴양림 미국가막사리
숲해설가님! 공부하십시요!
작가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나요?”일 것이다. 나도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대답은 이렇게 한다.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수없이 고치는 것입니다.” 이를 퇴고(推敲)라고 많이 부르는데, 퇴고가 바로 고치기인 셈이다.
글쓰기 최고 비법은 고치기인데, 이를 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단어를 떠올려야 하고, 문장을 바꾸어야 하고, 단락을 송두리째 버려야 하고, 기승전결 순서를 재조정해야 하고, 급기야 인내에 한계가 오면서 고치기는 중단이 된다. 당연히 글은 발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고쳐야 잘 고치는 걸까? “소설이나 전기, 그리고 지적인 논쟁 같은 것에도 모든 남아 돌아가는 것, 장황한 것, 막연한 열중,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는 것, 질질 끄는 경향이 있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은 나를 애가 타게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에 나오는 글인데, 무얼 고쳐야 할지 분명한 윤곽이 드러난다. 그런데 어떤 게 츠바이크가 언급한 것들인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게 또 난감하다. 답사, 만남, 자료 조사, 참고 서적 및 문헌, 인터넷 검색, 기나긴 사색 등을 기반으로 열심히 만들어낸 문장이 마음에 들어 좀처럼 버리거나 대체하기가 버겁기만 하다. 여기서 츠바이크의 조언은 빛을 발한다.
“《마리 앙트와네트》와 같은 전기물의 경우에는, 나는 실제로 그녀의 개인적인 소비 행태를 확인하기 위해 하나 하나 어떤 계산도 재검토했고, 그 시대의 모든 신문이나 소책자를 연구하였고, 모든 소송 서류를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인쇄된 책에는 이들 모든 것에 관해서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책의 대략적인 초고가 청서(淸書)되자마자 나는 본격적인 작업인 압축과 구성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현 하나 하나에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끝나지 않는 작업이다. 그것은 쉬지 않고 배의 안정을 위해 바닥의 짐을 갑판 위에서 내던지는 것과 같은 작업이며, 내면의 건축을 부단히 농축화하고 명석화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검토 자료를 지금 나의 글처럼 길게 인용하지 말고 내면화시켜 농축하고 농축하라는 지점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처럼 하려면 고치고, 고치고, 고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쳐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버린다. 더 움켜쥐고 있어도 좋은 문장이 나올 것 같지 않는 능력을 확인 사살하면서 나는 내가 숙성시킨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여러 텍스트를 잘 엮어서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로 자리매김을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글쓰기를 멈추고 싶은데, 뚝딱뚝딱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이 아직까지는 시간 사용에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 곡기 이어가듯 해나가고 있을 뿐이다.
차령산맥과 한남금북정맥
“차령산맥은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경제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용어입니다. 원래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백두대간을 36개로 토막내어 우리 민족의 혼을 뺏어 갔습니다! 차령산맥이 아니라 한남금북정맥입니다! 숲해설가님! 공부하십시요!”
라디오 방송에 달린 댓글인데, 읽으면서 뭉쳐오는 자괴감이 나를 쓰러뜨릴 것 같았다. 공적인 활동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엄연히 내 잘못이기에 라디오 작가에게 “차령산맥 댓글은 저 분이 맞습니다. 저도 알고는 있는 내용인데, 나무에 집중하다 보니 주의깊게 살피지 못했네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덧붙여 “그만할까 합니다”라는 말도 보낼까 했지만, 주어진 일 가급적이면 먼저 정리하지 않는다는 프리랜서 원칙을 떠올리며 마음만 그렇게 했다.
하지만 다음 방송 답사지를 가는 기차 안에서도 나를 질타한 댓글이 온몸을 휘젓고 다녀 어떻게든 내보내보고 싶었다. 그건 역시 글쓰기였다. 감정을 글로 옮기면 바뀌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을 열고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글로 남겼다.
“오늘은 KBS 오늘아침1라디오 '숲으로 가는 길'에서 경기도 안성 서운산자연휴양림과 그곳에서 만난 굴피나무 그리고 미국가막사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운산 소개말에서 차령산맥에 있다고 했는데, 댓글에서 차령산맥은 일본이 우리 혼을 빼앗기 위해 지은 거고 이제는 한남금북정맥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며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알고 있었던 내용인데, 저도 힘주어 했던 말이기도 한데, 나무에 집중한다고 까마득히 잊었네요. 공중파라 단어 하나하나도 면밀히 살피는데 이번에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사과드리고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더 분발하겠습니다.
숲해설가 교육 받을 때도 들었던 내용이고, 오랫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해설할 때도 두루두루 친일잔재 공부했고, 한양도성 해설할 때는 순간 관습적인 문장 뱉었다가 그 자리에서 수정 요구를 받기도 해서 늘 긴장하며 살피는데, 왜 그랬을까요? 지금도 숲해설 할 때 백두대간으로 우리 산하를 말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나무와 숲을 가까이 한다고 역사의식이 희박해지는 걸까요? 모르는 나무 공부해 나누기도 벅차 부차 문장은 집중하지 않는 걸까요?
《식물이 위로가 될 때》를 읽었는데, 서양 저자는 부처의 깨달음은 부처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안 경지라고 합니다. 숱한 경전이 무색해지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래도 수긍이 가기도 하는데요, 이 길을 가는 지금의 날들 자연이 만든 인간의 역사에도 계속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미 지난 방송이라 잊혀질 내용을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확산을 시켰다. 그것은 다음 글부터는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최면 같은 거였다. 그러면서 츠바이크를 또 떠올렸다. 자료를 무턱대고 쓰는 게 아니라, 나의 것으로 고치고 고쳐야 하는데, 여전히 그 비법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자책에 몸은 덜컹거리기만 했다.
도깨비바늘과 미국가막사리
“서운산자연휴양림이 있는 서운산은 높이는 547m인데요,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있는,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지고 있는 산이었는데요, 조용하고요, 8년여의 공사를 거쳐 2018년에 개장한 곳이라 시설도 좋다고 하십니다.”
라디오에서 한 내용인데, 여기서 내가 만든 문장은 없다. 인터넷 자료를 모아 적당히 짜깁기한 것이다. 문학이 아니라 정보 전달 영역이기에 불가피하지만, 실제로는 오랜 답사가 이루어지지 못해 부득불 기존 자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무 해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상 나무를 자주 관찰해 그의 개성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잠깐 살핀 나무에 대한 이야기, 도감과 인터넷 자료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따금 내가 살핀 특징을 문장으로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스치듯 만난 인연 감정이입이 턱없이 부족해 빛나는 문장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자책의 특기자처럼 그게 내 한계라고 또 말한다. 서운산자연휴양림 나무 동정도 동기 숲해설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무 이름이 쓰여 있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겨울의 나무 동정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혼자 갔으면 도무지 알아채지 못했을 미국가막사리를 방송에서 소개했다.
미국가막사리는 국화과 한해살이풀로 귀화식물이다. 얼핏 보면 도깨비바늘 같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봤다. 그런데 미국가막사리를 이해하려면 도깨비바늘부터 밟아야 한다.들이나 산길 풀숲을 걷다가 보면 바지에 바늘 같은 열매들이 잔뜩 붙어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언제 붙었는지 몰라, 도깨비처럼 몰래 들러붙는다고 해서 도깨비바늘이라고 했다는데, 도깨비바늘은 주로 건조한 곳에서 잘 자란다. 이와 달리 물가 등 습지에서 잘 자라는 풀이 있는데, 가막사리다. 가을 수확기 때 미늘 같은 갈고리가 있는 열매들이 까맣게 달라붙는다고 해서 가막사리라고 한단다.
도깨비바늘과 가막사리 구분 점은 다음과 같다. 도깨비바늘은 국화과처럼 가짜 꽃인 혀꽃이 있고, 가막사리는 같은 국화과이지만 혀꽃이 없고 꽃 밑에 녹색의 꽃받침조각이 있다. 열매를 보면, 도깨비바늘은 두 팔을 하늘 위로 쭉 뻗은 듯한 모습이고, 가막사리는 두 팔을 좀 넓게 벌린 모습인데, 지금 우리 산천에는 도깨비바늘보다 가막사리보다 미국가막사리가 점령을 하고 있단다.
농촌진흥청 자료가 전하는 우리 토종인 가막사리와 미국가막사리 차이를 보면, “가막사리는 줄기가 녹색이고, 잎은 작은 잎이 3개로 보이지만 복엽이 아닌 단엽이고, 종자는 편평하고 까락이 2개이다. 미국가막사리는 줄기가 붉은색이고 잎은 3개의 작은 잎으로 된 진짜 복엽이고, 종자는 가막사리와 마찬가지로 편평하고 까락이 2개이다. 또한 가막사리에는 혀꽃이 없는데, 미국가막사리에는 작은 혀꽃이 있는 게 특징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미국가막사리가 잘 번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미시시피강 유역이 원산지인 미국가막사리는, 비가 온 뒤 물살이 흘러갈 때, 밑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종자가 자연스럽게 물에 떠서 물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침수에도 강하다”고 나와 있다.
도깨비바늘, 가막사리, 미국가막사리가 우리 몸에 붙는 건 씨를 이동시키기 위한 생존전략인데, 이를 보고 우리가 만들어낸 발명품이 벨크로로 불리는 찍찍이다. 찍찍이는 우리 생활에 많은 편의를 가져다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미국가막사리에서 무얼 가져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가? 엉덩이를 붙이고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꿰어볼 뿐 고치고 고쳐 나의 문장 만들기에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데, 어떤 공감이 마련된다는 건가?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소설 글쓰기가 아니라서 피 끓는 투혼을 발휘하지 않는 건가?
이제 다른 질문을 만들어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무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나요?” 답은 명백하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수없이 고쳐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문장에 생명이 생긴다. 알면서도 집요하지 못한 내게 바늘이라도 꽂아다오! 푹, 아프게!
김서정 숲해설가 겸 작가ㅣ오피니언타임스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