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2) 매일 팽창하며 늙어가는 우주.. 결국, 생산력 제로 '不備의 세계'로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매일 팽창하며 늙어가는 우주.. 결국, 생산력 제로 '不備의 세계'로 (daum.net)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매일 팽창하며 늙어가는 우주.. 결국, 생산력 제로 '不備의
② 우주의 끝은 있을까? : 가속 팽창과 우주의 종말1998년 천문학자들은 우주 팽창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했다. 놀랍게도 우주는 중력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팽창이 더뎌질 것이란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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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매일 팽창하며 늙어가는 우주.. 결국, 생산력 제로 '不備의 세계'로
② 우주의 끝은 있을까? : 가속 팽창과 우주의 종말
1998년 천문학자들은 우주 팽창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했다.
놀랍게도 우주는 중력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팽창이 더뎌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점점 더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매일 밤 우주는 우리가 지금껏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가장 밝고 아름다웠던 모습의 우주인 셈이다.
1889년 5월의 어느 여름날, 프랑스 남부의 한 작은 도시 생 레미의 정신 병원으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결국 동생의 권유로 스스로 입원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는 가난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림이었다. 그는 몇 년 전 우연히 접한 한 천문학자의 삽화에 매료돼 있었다. 그 천문학자의 그림들을 계속 바라보며 좁은 병실에서 우주를 상상했다. 고흐를 위로해 준 건 바다 건너 아일랜드의 천문학자, 윌리엄 파슨스가 그린 성운들의 그림들이었다.
로스 백작으로도 불리는 파슨스는 1842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망원경을 만들었다. 그 지름만 1.8m나 됐다. 그 압도적인 규모는 마치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 위해 끌고 갔던 청동 대포를 연상시킨다. 파슨스는 자신의 거대한 망원경으로 소용돌이치는 나선 성운들을 관측했다.
일부 천문학자는 이것이 사실 우리 은하 바깥에 멀리 떨어진 별개의 은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건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렸다. 당시에는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개별 은하를 의미하는 갤럭시(galaxy)라는 말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우주 자체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같은 의미였다. 우리 은하 바깥에 또 다른 은하들이 있다는 주장은, 지금으로 치면 우리 우주 바깥에 또 다른 우주가 즐비하다는 다중 우주 가설만큼 망상처럼 들렸다.
천문학자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소용돌이 성운들의 정체를 두고 긴 논쟁을 벌였다. 1920년 4월에는 두 편을 대표하는 천문학자들이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모여 공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우주의 크기를 잴 방법이 없던 당시에는, 두 주장 모두 나름 타당해 보였다. 1920년 벌어졌던 천문학계 대논쟁은 서로의 첨예한 입장 차만 더 공고히 했을 뿐 그 자리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지난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에드윈 허블의 우연한 발견이었다. 그는 1923년 10월, 가을 하늘에 떠 있는 유명한 나선 성운 안드로메다를 관측했다. 그런데 허블은 성운의 사진 속에서 무언가 낯선 별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폭발하며 밝아진 신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쭉 연이어 관측해 보니 그 별은 갑자기 나타난 신성이 아니라, 일정한 템포로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었다. 마침 허블이 안드로메다를 관측하기 몇 년 전, 변광성을 활용해, 그 별까지의 거리를 아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기법이 개발된 직후였다. 헨리에타 레빗의 공이었다. 허블은 레빗의 방법을 활용해, 변광성을 품은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를 직접 쟀다. 놀랍게도 안드로메다까지 거리는 당시 알고 있던 우리 은하의 크기를 훨씬 벗어났다. 몇 년 전까지, 망상처럼 여겨졌던 우리 은하 바깥에 또 다른 우주들이 즐비할 것이라는 섬 우주 가설이 분명한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게다가 이 나선 성운, 은하들은 더욱 놀라운 모습을 보여 줬다. 은하 대부분 우리에게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졌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 은하를 중심에 두고 사방팔방의 은하들이 빠르게 후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전 인류가 포기해야 했던,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희망을 다시 꿈틀거리게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은하들의 일관된 후퇴 현상은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공간 자체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다른 먼 은하들에 사는 외계인 천문학자가 본다면 그들의 은하에서 멀어지는 우리 은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앞선 선구자들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던 우주가 팽창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수학적인 예측과도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우주의 팽창은 우주의 나이테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우주 팽창의 물살을 거슬러, 모든 것이 한 점에서 시작됐던 태초의 순간을 상상할 수 있다.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되감다 보면, 더 이상 되감을 수 없는 끝에 다다르는 것처럼, 우주의 타임라인에도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분명한 시작점이 있었다.
이전까지, 우주의 타임라인은 그저 막연하게 양옆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는 수평선이었다. 과거 인류는 우리가 왼쪽으로 마이너스 무한대부터, 오른쪽으로 플러스 무한대까지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의 임의의 시점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빅뱅 우주론은 돌연 왼쪽으로 무한히 뻗어 있던 수평선을 댕강 잘라 버렸다. 우주의 타임라인은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에 해당하는 시점에서 끊겨버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주 타임라인이 꼭 왼쪽에서만 잘릴 이유가 있을까? 어쩌면 오른쪽, 즉 미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당연히 그 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1998년 천문학자들은 시간에 따라 우주 팽창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했다. 아주 먼 초기 우주의 은하들의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아주 밝은 초신성 폭발을 활용했다. 놀랍게도 우주는 중력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팽창이 더뎌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점점 더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텅 빈 공간이 늘어날수록, 더 지치지 않고 빠르게 가속하고 있다. 이 추세를 봤을 때 우주의 가속 팽창은 걷잡을 수 없어 보인다. 이러한 우주의 팽창이 지속된다면, 먼 미래 은하와 은하뿐 아니라, 별과 별 사이, 심지어 원자와 원자 사이의 간격마저도 벌어지는 빅 립(Big Rip)의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결국 우주는 더 이상 중력에 의지해 별을 반죽하고, 또 자신의 아름다움을 바라봐 줄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없는, 생산력 제로에 도달한 불비(不備)의 세계가 될 것이다. 열역학 법칙의 엔트로피가 절정에 이르러 우주가 더 이상 파괴할 것이 남지 않을 때까지 우주는 스스로를 해체하고 파괴해 갈 것이다.
이처럼 우주는 매일 밤 조금씩 덜 아름다워지고, 어두워져 가는 방향으로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 매일 밤 모든 순간의 우주는 우리가 지금껏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가장 밝고 아름다웠던 모습의 우주인 셈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1초 사이에 우주는 그새 더 팽창하고 더 어두워져 버린다. 우주가 이렇게 하염없이 팽창하며 타임라인의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일 밤 우주를 놓치지 말고 눈에 담아야 하는 가장 합당한 이유를 이야기해 준다.
아쉽게도 우리는 우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할지는 알 수 없다. 일부 이론에 따르면, 빅 립은 다시 한번 우주의 에너지장에 균열을 일으키며, 그 틈새에서 새로운 빅뱅과 함께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우주 역시 과거 존재했던 폐허가 돼 버린 우주의 잔해 속에서 피어난 새싹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지, 시간이 갈수록 더 어두워지고 차가워지는 방향으로 우주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그저 매일 조금씩 쇠약해지고, 쓸쓸해져 가는 우주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부디 우주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다시 새로운 싹을 피우기를 바랄 뿐이다.
고흐는 병원에 머무는 동안 천문학자 파슨스의 책 속 소용돌이치는 은하들의 삽화를 보면서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우리 우주가 그 은하들처럼, 소용돌이치고 물결치는 세상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병원을 퇴원한 고흐는, 그해 여름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 뒤로 떠오른 밝은 금성과 초승달이 물결치는 밤하늘을 완성했다.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은 이렇게 완성됐다.
물론 고흐는 천문학에 대해선 알지 못했고, 자신이 본 삽화에 담긴 천체가 사실 우리 은하 바깥의 거대한 또 다른 은하라는 사실도, 또 그 은하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에게서 멀어지며 결국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란 사실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고흐는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런 깜깜한 어둠의 끝에는 또 다른 새로운 우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걸 말이다. “가장 어두운 밤도 언젠가 끝이 나고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빈센트 반 고흐)
지웅배 과학 저술가·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연구원ㅣ문화일보
■ 용어설명
우주 가속 팽창 = 1998년 솔 펄머터와 애덤 리스의 연구진이 서로 독립적으로 먼 은하들의 초신성을 관측한 결과 먼 우주에 비해 가까운 우주의 우주 팽창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주 팽창이 갈수록 빨라진다는 것이다. 물질들의 중력에 의해 우주 팽창이 더 더뎌질 것이라는 기존 예측에 반하는 발견이었다. 이 가속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서 중력을 거슬러 시공간을 더 빠르게 부풀리는 암흑 에너지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이 제시됐다.
빅 립(Big Rip) = 우주의 끝, 즉 궁극적 종말에 대한 여러 가설 중 하나다. 우주의 가속 팽창이 계속되다 보면, 먼 미래 은하, 별, 행성들만 흩어지는 게 아니라, 그 팽창이 원자핵, 전자 사이의 결합력까지 압도하게 돼 결국 원자보다 더 작은 수준으로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가 산산이 쪼개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빅 립 가설의 창시자 로버트 콜드웰은 앞으로 약 220억 년 뒤에 이런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 2022.04.25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