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의 최전선] “면역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밝힌다” 구조생물학자 김명희 (2022.04.06)
“면역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밝힌다” 구조생물학자 김명희 - 주간조선 (chosun.com)
“면역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밝힌다” 구조생물학자 김명희
김명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체와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라고 했다. 지난 1월 20일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김 박사는 박사과정 때는 미생물학을 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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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 “면역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밝힌다” 구조생물학자 김명희
김명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체와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라고 했다. 지난 1월 20일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김 박사는 박사과정 때는 미생물학을 공부 했다. 박사후연구원 때는 구조생물학을 공부했는데 구조생물학자는 단백질, DNA, RNA의 입체 구조를 밝혀 그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는 올해 한국구조생물학회 부회장이고 한국결정학회 회장으로도 일한다. 구조생물학자의 주요 도구 중 하나가 엑스선결정학이니, 김명희 박사가 왜 구조생물학과 결정학이라는 두 분야 학회에서 활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김명희 박사는 충남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 85학번. 식품영양학은 재미없어 공부하지 않았다. 원래 건축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무슨 얘기냐. 식품영양학과 다녀야지”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때는 딸 키우는 부모들이 흔히 그랬다.
학부 졸업 후 충남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김 박사는 대학원 진학 이유에 대해 “부모님이 여자도 일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갖고 계셨다”라고 말했다. 식품미생물학자인 손천배 교수 지도를 받았는데 미생물학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했다.
연구 인생의 은인들
1990년 초 대학원 석사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배울 기회를 가졌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젊은 연구원들로부터 분자생물학, 미생물학, 효소공학이라는 첨단 연구 기법을 배웠다. 김 박사는 “석사 때 가르쳐준 구본탁 박사님은 잊지 못할 스승 중 한 분”이라면서 “연구 인생에서 은인이 몇 분 있다. 손천배 교수님, 구본탁 박사님, 그리고 오태광 박사님(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역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충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간 일했고, 2000년 미국 버지니아대학(샬러츠빌 소재)에서 구조생물학에 입문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과 둘이서 샬러츠빌에 갔다. 김명희 박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버지니아대학에서 지그문트 디레웬다(Zygmunt Derewenda) 교수를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희 박사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때까지는 그저 배우고 시키는 일을 하는 수동적인 연구 생활을 했다면, 디레웬다 교수는 ‘명희, 연구 디자인은 이렇게 해야 한다. 특히 융합적인 관점에서 과학을 해야 한다’는 걸 처음으로 일깨워줬다. 구조생물학 기술로만으로는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 그러니 다른 기술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찾아 공동연구를 해야 한다. 큰 그림을 갖고 사이언스를 해야 그 연구가 임팩트(impact)가 있다. 그때 처음 이런 걸 디레웬다 교수가 가르쳐줬다.” 김 박사는 이어 “그러니 동료 과학자를 만나면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기술을 갖고 있고, 그 기술을 나의 사이언스에 접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술지에 보내는 ‘커버레터’
김명희 박사는 논문 출판을 위해 학술지에 보낼 때 에디터에게 편지를 쓰는 법도 디레웬다 교수로부터 배웠다. 김명희 박사 설명을 듣기 전에는, 과학자가 투고하면서 학술지 에디터에게 그렇게 정색을 하고 이메일을 쓰는 줄 몰랐다. 논문을 투고하면서 쓰는 편지를 ‘커버레터(cover letter)’라고 한다. 그간 수백 명의 과학자를 만났으나 ‘커버레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김명희 박사가 논문과 함께 보낼 커버레터를 써놓은 게 있다며 프린트해서 보여준다. 최상위 과학학술지 편집장 앞으로 보내는 두 장짜리 ‘커버레터’였다. “내가 이런 제목으로 논문을 썼다, 한마디로 논문의 가치를 말하면 이런 거다, 이 분야 관련 연구자들에게 우리가 연구한 내용이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거다 등 이런 식으로 쓴다. 정해진 양식은 없으나 논문이 심사할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에디터에게 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잘 작성해야 한다. 나는 중간에 번호를 매기면서 간단하게 핵심적인 논문 내용을 소개한다. 그리고 맨 뒤에는 이 논문을 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추천한다. 영어로 ‘서제스티드 리뷰어(Suggested reviewers)’라고 하는데, 이 논문을 잘 이해할 사람, 즉 이 분야 전문가는 누구누구라고 리스트를 준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디레웬다 교수님은 내 인생의 스승이다.”
김명희 박사는 미국에 가서 ‘자기 목소리’를 또렷이 내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의견을 정확하게 내지 않으면 손해 보는 일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쉽지 않은 아시아 여성 과학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 박사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 나중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돌아왔을 때 선배 과학자들이 ‘옛날 그 김명희 맞아?’ 하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샬러츠빌에서는 인간의 뇌와 관련된 단백질을 연구했다. 인체에 관한 연구를 처음 접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신경세포를 정해진 자리로 정확하게 이동시키는 단백질이 있는데 신경세포이동단백질(neuron migration protein)이라고 부른다. 신경세포이동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태아기에 신경세포를 제자리로 데려가는 데 문제가 생겨 정상적인 뇌 구조 형성이 안 된다. 뇌의 주름 형성과 6개 층으로 이뤄진 대뇌피질 형성이 불완전하게 된다. 뇌 구조 기형으로 이어지고 정신장애, 간질 등의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신경세포이동단백질들의 구조를 분석하여 기능이 무엇인지, 돌연변이가 생기면 기능이 어떻게 망가져 질환이 발생하는지를 규명하는 연구를 했다. 연구를 시작하고 처음 2년간 아무런 진전이 없어 많이 힘들었다. 나보다 먼저 온 박사후연구원들이 상대적으로 쉬운 주제를 가져갔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 프로젝트를 내가 맡았었다. 디레웬다 교수는 자주 모닝커피를 함께하면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격려를 많이 해줬다.”
논문은 2003년 5월에 학술지 ‘네이처 구조생물학(Nature Structural Biology)’에 발표하였다. 당시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저명한 신경세포생물학자인 크로스퍼 월시가 공동연구자 중 한 명이었다. “내가 커버할 수 없는 연구는 좋은 친구를 찾아서 공동연구를 해야 한다”고 디레웬다 교수가 강조했는데, 이 연구의 경우에 ‘좋은 친구’는 하버드의 신경세포생물학자였다.
‘생체방어시스템 연구실’ 가동
김명희 박사는 2004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사업 계약직 선임연구원 자리를 제안받고 귀국했다. ‘21세기 프론티어 미생물유전체 활용기술 개발 사업단’에 합류했다. 귀국 후 병원성 세균 간의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효소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하여 200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였고, 이 같은 실적을 인정받아 2006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정규직 선임연구원이 되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자리를 잡은 김명희 박사는 연구책임자(P.I.· Principal Investigator)가 되어 자신의 연구실을 만들었다. 이름은 ‘생체방어시스템 연구실(Infection & Immunity Research Laboratory)’. 그때 그의 사무실 공간을 지금까지 16년째 쓰고 있다. 사무실이 본관동 3층에 자리 잡은 이유를 물었더니, 그 자리가 그가 참여했던 ‘21세기 프론티어 사업단’의 연구 공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감염에 관심이 있었고, 귀국 후 본격적으로 감염 세균인 패혈증 비브리오균과 인체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패혈증 비브리오균이 만드는 독성단백질들이 어떻게 인체 내에서 작용하여 패혈증을 일으키는지를 보는 연구였다.
2010년은 김 박사에게는 또 하나의 연구 전환점이 있었다. 국가사업인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이 종료되고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는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단 중의 하나인, 김성훈 교수가 이끄는 ‘의약 바이오 컨버젼스 연구단’에 참여했다. 9년간 사업에 참여하면서 김명희 박사는 인간 유래의 ‘단백질합성 효소’에 관한 연구에 입문하고 집중했다. 단백질합성 효소가 무엇일까, 김 박사 설명을 들어본다.
“세포의 핵 내에서 만들어지는 ‘DNA 유전정보’는 ‘전사RNA(mRNA)’로 옮겨지고 핵 바깥의 세포질로 나가서 단백질합성 공장인 리보솜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이후 전사RNA 염기서열(유전정보)에 맞는 아미노산을 ‘운반RNA(tRNA)’가 운반해 갖고 오면, 전사RNA 염기서열대로 맞춰 아미노산 사슬을 만든다. 이 아미노산 사슬이 접혀서 3차원 구조가 된 게 단백질이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합성 효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미노산을 운반RNA에 붙여 주는 역할’이다. 아미노산은 20가지인데, 각각에 짝이 되는 운반RNA가 있다. 그리고 두 개를 짝지어주는 20종의 단백질합성 효소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백질합성 효소는 항상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만들어져 있다. 놀랍게도 단백질합성 효소가 단백질합성에 필요한 효소라는 주요 기능 외에도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선구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수십 년 전부터 밝혀졌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일하고 최근 연세대 약학대학으로 옮기신 김성훈 교수님이 그중에 한 분이다.”
김명희 박사는 인간 유래의 단백질합성 효소 중 감염과 관련된 면역 기능이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를 2016년 ‘네이처 면역학(Nature Immunology)’에 발표했다. 김명희 박사 그룹이 발견한 건 EPRS(glutamyl-prolyl tRNA synthetase)라는 단백질합성 효소가 인체의 ‘항바이러스 면역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단백질합성 효소의 ‘항바이러스 면역 기능’
RNA 바이러스가 몸에 감염되면 면역반응이 즉각 일어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나 독감 바이러스가 RNA 바이러스다. 김 박사 그룹은 독감 바이러스를 갖고 연구를 했다. 인간 세포질에 존재하는 단백질합성 효소 20종 중 8종은 거대한 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EPRS도 거대 복합체의 한 구성원이다. 김 박사 그룹은 RNA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 복합체가 이를 인지하고 EPRS를 방출시켜 항바이러스 면역 기능을 한다는 걸 발견하였다. EPRS는 인체의 핵심 항바이러스 단백질(MAVS)을 보호하여 결과적으로 RNA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게 한다.〈그림 참조〉
김명희 박사는 이런 연구를 하면서 ‘홀로바이온트(holobiont)’라는 새로운 개념을 갖고 인체와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체와 그리고 인체에 공존하는 미생물 총체를 고려한 완전체가 홀로바이온트 개념이다. 김 박사는 “나의 연구 방향을 홀로바이온트 쪽으로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구는 감염된 미생물만을 고려해서 인체와의 상호작용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감염된 미생물은 인체와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들과 만나고 그들 사이의 복잡한 반응이 있다. 그 결과들에 따라 몸이 건강할 수도 아플 수도 있다. 사람의 장에는 사람 세포 수보다 약 1.3~2배 많은 미생물이 있다. 감염을 연구할 때 이러한 환경을 고려해야 하고 최근 연구의 방향이 그렇게 가고 있다.
감염뿐 아니라 어떤 질환이라도 그런 인체 환경을 봐야 한다. 김 박사 얘기를 계속 들어본다.
“우리는 단백질합성 효소들을 기반에 두고 ‘홀로바이온트’ 개념의 연구를 시작했다. 장내 미생물 유래의 단백질합성 효소가 인체 면역에 영향을 주는지, 반대로 인체는 그러한 효소 기능에 영향을 주는지 하는 양방향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까지 우리를 포함해 단백질합성 효소 대부분의 연구 그룹은 인체의 항상성 조절에 있어 인간 유래의 단백질합성 효소만을 고려해왔다. 우리 그룹은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 미생물도 단백질합성을 위해 단백질합성 효소를 갖고 있다. 그러니 미생물 단백질합성 효소가 인체와 상호작용하여 인체의 항상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게 가설이다.”
김 박사는 이러한 가설을 세워 5년째 연구를 하고 있다. 앞에서 그가 보여줬던 ‘커버레터’가 그 논문을 학술지에 보내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그는 5년 안에 성취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고 했다. 인간의 단백질합성 효소 복합체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구조가 밝혀지면 단백질합성 효소들이 왜 복합체로 존재해야만 하고, 어떻게 복합체 형태로 아미노산을 운반RNA에 연결해주고, 그리고 어떤 원리에 의해 단백질합성 기능 외에도 다양한 항상성 조절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생명의 근원적인 질문이 풀린다면 생물학 교과서의 단백질합성 효소 부분을 새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김 박사 그룹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장송이 박사가 10년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지 않고 연구를 해왔고, 최근 연구에 진전이 있다고 한다.
그는 구조생물학자로서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엑스선결정학 방법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단백질합성 효소 복합체는 최신 방법인 초저온-전자현미경 방법으로만 구조를 규명할 수 있어서 초저온-전자현미경 기술도 연구실에 도입했다. 일본 오키나와의 신흥 연구중심 대학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에서 배워왔다고 했다. 김 박사는 “OIST는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연구자 5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OIST 랭킹이 매우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홀로바이온트라는 새로운 개념
김 박사는 연구실에 구조생물학·생화학, 세포생물학, 미생물학, 면역학, 동물 모델 전문가들이 합류해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분자 수준에서 동물 모델까지 융합적으로 디자인된 연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실 환경은 ‘홀로바이온트’ 연구를 통해 성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명희 박사 취재는 시계를 보면서 진행해야 했다. 그가 서울행 열차를 예약해뒀기 때문이다. 같은 날 오후 서울역 근처에서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라는 대형 프로젝트 기획 관련 미팅이 있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8개 정부 부처가 합심하여 추진하고 있는 조 단위 사업으로 예산 타당성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명희 박사는 인간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한 과학자의 연구 내용, 그리고 과학자가 연구하는 방법을 청취한 흥미로운 취재였다.
최준석 선임기자ㅣ주간조선 2022.03.04
/ 2022.04.0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