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의 최전선] ‘면역 사령관’ 비밀 밝히는 정연석 서울대 약대 교수 (2022.04.06)
‘면역 사령관’ 비밀 밝히는 정연석 서울대 약대 교수 - 주간조선 (chosun.com)
‘면역 사령관’ 비밀 밝히는 정연석 서울대 약대 교수
정연석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면역학자인 줄만 알고 갔다. 그의 연구실 웹사이트를 살펴봤지만 연구의 흐름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2월 19일 만난 정 교수는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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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 ‘면역 사령관’ 비밀 밝히는 정연석 서울대 약대 교수
정연석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가 면역학자인 줄만 알고 갔다. 그의 연구실 웹사이트를 살펴봤지만 연구의 흐름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2월 19일 만난 정 교수는 “나는 CD4+T세포를 연구하는 면역학자”라고 말했다. CD4+T세포는 처음 듣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천천히 말하기로 하자. 그가 “두서없이 말하겠다”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학과와 의대의 타협이 약대
그는 서울대학교 약대 93학번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화학이 막연히 재밌겠다고 생각해 화학과를 지원하려고 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화학 하면 굶는다”라며 대신 의대 진학을 권했다. 그는 종일 환자를 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타협해서 약대에 진학했다. ‘의대’와 ‘화학과’의 중간 지점이 약대라고 생각했다. 정 교수는 “당시에 나도 그랬지만 지금도 약대 하면 뭐하는 곳인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 고3 진학상담 교사들도 잘 모르겠다며, 서울대 약대에 물어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학부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 강창율 교수 지도를 받아 면역학을 공부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을 갖고 썼다.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에 대해 몸의 면역계는 면역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알고 보면 외부라는 출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물질이 위험한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위험하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는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데, 그 대표적인 게 음식이다. 그게 왜 그런지, 면역 관용이 어떤 세포들에 의해서 일어나는지를 규명하는 연구를 박사과정 때 했다.
2003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5년 미국 휴스턴 MD앤더슨 암센터에 박사후연구원으로 갔다. MD앤더슨 암센터는 암센터로는 미국 내 최대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폐암 치료를 이곳에서 받은 바 있다. 이곳에서 정연석 박사는 면역학자인 첸동(Chen Dong·董晨) 교수 실험실로 갔다.
첸동 박사는 매우 유명한 발견 두 가지를 한 사람이다. 면역세포인 조력T세포 그룹에 Th17세포와 Tfh세포 두 가지가 더 있다는 걸 발견했다. Th17세포는 시애틀(워싱턴대학)에 있을 때 발견했고, 관련 논문은 휴스턴에 온 뒤인 2005년에 냈다. Tfh세포는 휴스턴에서 찾았다. 당시 학계는 조력T세포에는 Th1세포, Th2세포, 조절T세포가 있다는 것밖에 몰랐다. 예컨대 조절T세포 자체가 발견된 것도 정 교수가 서울대 학생 시절인 1995년 일본 연구자(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학 교수)에 의해서였다.
정 교수는 “조력T세포 5개를 정식 멤버라고 우리 분야에서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5종류는 Th1세포, Th2세포, Tfh세포, Th17세포, 조절T세포를 말한다. 앞에서 정 교수는 자신을 CD4+T세포 연구자라고 소개했는데, CD4+T세포가 분화하면 5가지 조력T세포로 변한다. CD4+T세포 말고 T세포를 이루는 또 하나의 큰 그룹이 있다. CD8+T세포다. CD8+T세포는 세포독성을 가졌고, 제대로 작동하면 암세포와 같은 변형된 세포를 찾아가서 죽인다.

사람 뇌에 해당하는 CD4+T세포
CD4+T세포는 여러 가지 세포를 도와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알레르기 반응 조절, 항체 반응 조절 등등을 한다. CD4+T세포가 분화한 세포 그룹에 ‘조력(help)T세포’란 이름이 붙은 건 이 때문이다. 정 교수는 “CD4+T세포가 사람으로 치면 뇌에 해당하고, 전쟁으로 말하면 지휘하는 사령관에 해당하는 일을 한다”라고 말했다.
정연석 박사는 2009년 최상위 면역학 학술지인 ‘면역(Immunity)’에 논문을 썼다. 인터루킨(IL)-1이라는 단백질이 Th17세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휴스턴에 간 지 4년 만의 성과다. 정 교수가 이 대목에서 T세포의 체내 면역 활동에 대해 큰 그림을 보여줬다. 설명을 옮겨 본다.
“T세포는 흉선(Thymus)에서 만들어지고, T세포 외의 다른 모든 면역세포는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흉선은 심장 위에 딱 붙어 있다. T세포는 흉선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서 흉선의 영어 첫 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흉선과 골수 두 곳이 1차 면역기관이다. 만들어진 면역세포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은 비장이다. 비장 말고 림프절로도 T세포는 간다. 림프절은 콩알 크기이고, 외부 물질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코, 입, 눈 근처에 몰려 있다. 겨드랑이, 사타구니, 목에도 있다. 비장과 림프절이 2차 면역기관이다.
예컨대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을 팔에 맞으면, 몸에 들어온 이물질인 백신을 제일 먼저 탐지하는 건 수지상세포다. 수지상세포는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며 외부의 해로운 물질이 있는지를 탐지한다. 이상한 물질이 있으면 공격하고 그 잔해물 일부를 관할 경찰서, 즉 인근의 림프절로 갖고 간다.
림프절에는 T세포와 B세포가 있다. 이들 세포는 온몸을 뒤지는 일을 하지는 않고, 림프절만 이동해 다닌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림프절만 점검하면 우리 몸에 누가 침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활동이다. 가령 T세포는 수지상세포가 잡아온 이상한 물질을 만나면 그 물질에 따라 기능이 다른 T세포로 분화한다. 가령 감염의 경우 균을 공격하는 T세포로 변화하고, 목표 지점을 찾아 혈관을 타고 이동한다. 감염된 곳 인근의 혈관 벽에는 감염지역이라는 표시가 있다. 표시를 타고 들어가 T세포는 침투한 균을 공격한다.”
모든 가능성 열려 있는 T세포
정 교수는 “T세포는 초등학교 학생과 같다. 만들어질 때는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갈 때는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모르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면역세포는 기생충으로부터 몸을 방어하고, 곰팡이 감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등의 좋은 일을 한다. 면역세포는 문제도 일으키는데 그중 하나가 면역질환이다. 자기 몸의 세포를 침입자로 잘못 판단해 몸을 공격해서 일어나는 게 면역질환이다. 정 교수는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반응하면 문제가 된다. 균형이 깨져서 문제가 되는 게 자가면역질환이다. 모든 면역세포가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연석 박사는 휴스턴에서 2011년에는 학술지 ‘네이처메디신(Nature Medicine)’에 논문을 냈다. B세포 반응을 조절하는 T세포인 Tfr세포 관련 연구였다. 연구 배경은 이렇다. 첸동 교수 연구실의 ‘저널클럽’ 시간이었다. 저널클럽은 해당 실험실 연구 분야의 학술지에 나온 최신 논문을 공유하는 자리다. 최신 논문이 뭐가 나왔는지를 조사하고 읽어 와서 같은 실험실 사람들 앞에서 내용을 공유한다. 앞에서 조력T세포는 5종류가 있고 그중에 조절T세포가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조절T세포가 한 종류가 아니고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게 밝혀진 게 2008~2009년이다. 1번 조력T세포를 조절하는 세포가 있다는 게 학술지 ‘네이처면역학(Nature Immunology)’에 나왔고, 2번 조력T세포를 조절하는 조절T세포가 있다는 건 학술지 ‘사이언스’에 보고됐다. 학술지 네이처에는 17번 조력세포를 조절하는 조절T세포가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런 흐름을 파악한 정연석 박사에게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다. Tfh세포를 조절하는 조절T세포는 없을까?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겠다고 첸동 박사에게 얘기했고, 좋다는 답을 들었다. 실험실에는 첸동 그룹이 Tfh 조력세포를 찾을 때 사용한 실험 도구들이 남아 있었다. 그걸 갖고 실험을 했고, Tfh를 조절하는 조절T세포가 있다는 걸 찾아냈다. 정 교수는 “논문 초록을 보스(첸동 박사)가 201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네이처메디신에 보냈다. 날짜가 잊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심혈관계와 면역계의 대화를 파고들다
논문 심사는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맡겨진다. 심사를 의뢰받은 호주국립대학교의 캐롤라 비누에사(Carola Vinuesa) 박사가 정연석 박사 논문 초록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기 그룹이 하고 있는 연구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심사를 못 한다고 한 후 그간 진행하던 자신들의 연구 데이터를 갖고 서둘러 논문을 썼다. 2011년 1월 둘째 주에 논문을 네이처메디신에 보냈다. 두 그룹의 논문은 서로 보완적이었다. 각자 다른 접근방법을 사용했으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대가 그룹 두 곳이 같은 결과를 내놓자 학술지 측은 논문을 중요한 발견으로 받아들였다. 논문 두 개가 같은 호에 나란히 실렸다. 이런 논문을 ‘백투백 페이퍼스(back-to-back papers)’라고 한다. 첸동 교수는 본 논문에 정 교수를 제1저자이자 공동교신저자로 표기했다. 정 교수의 핵심적인 기여를 인정한 것이다.
2010년 6월 정연석 교수는 텍사스주립대학교 휴스턴캠퍼스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교수가 되면 자기만의 주제를 찾아야 한다. 몇 개월간 논문을 읽으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생각해보니, 학부 시절부터 가졌던 오래된 질문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약대 학부 시절의 해부학 수업 때로 질문은 올라간다. 해부학 책을 보면 사람 몸의 혈관 분포가 나온다. 혈관 분포가 그물처럼 되어 있다. 도로망과 같다. 그런데 림프관이 혈관 옆에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혈관과 나란히 분포되어 있다. 또 그와 유사한 게 신경계이다. 당시에는 혈관계, 면역계, 신경계가 발생학적으로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정 교수는 신경계까지는 모르겠지만 심혈관계와 면역계가 어떻게 대화하는지, 서로를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연구해보기로 했다.
관련 논문을 찾아 읽었다.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자가면역질환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 나중에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논문들이 있었다. 자가면역질환과 심혈관계질환은 전혀 다르다. 두 개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건 무엇일까? 과학적인 질문을 ‘심혈관계질환이 면역질환을 조절하느냐’로 좁혔다. 고지혈은 피에 지질(lipid)이 정상 이상으로 늘어난 상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 ‘고지혈 혹은 지질 이상이 면역계와 면역질환을 음으로 양으로 조절할 수 있나’ 하는 게 당시 정 교수가 풀고자 하는 과학적 질문이었다.
고지혈 생쥐 모델을 갖고 연구했다. 유전적으로 고지혈이거나 지방이 많은 사료를 먹여 대동맥 판막에 염증이 생긴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Th1세포나 Th17세포가 원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해보니 Th1은 아니었고 Th17세포가 염증부위에 많이 보였다. 2014년 학술지 ‘면역’에 교신저자로 논문을 냈다. 심혈관계질환과 면역질환이 대화를 한다는, 즉 전혀 발생 기전이 다른 걸 연결해서 보았다는 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교수가 된 지 3년 반 만에 나온 성과였다.
면역학자는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많이 만든다. 그는 두 연구를 위해 세계적으로 없는 유전자 변형 생쥐를 휴스턴에서 만든 바 있다. 두 연구는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한 주제는 휴스턴에서 몇 년 했으나 정 교수 가설이 틀린 걸로 나왔다. 다른 한 개 주제는 한국에까지 가져와 10년이나 붙잡고 연구했다. 유전자 변형 생쥐를 어렵게 만들었으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서울대에서 일하는 지금 그는 유전자 변형 생쥐 모델을 30개 이상 갖고 있다. 정 교수는 “서울대에서 우리 그룹이 유전자 변형 생쥐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연구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서울대에 온 건 2014년 3월이다. 미국 대학 교수라는 좋은 연구 환경을 왜 마다했을까 궁금하다. 귀국한 이유를 물었다. 정 교수는 “좋은 질문”이라고 말했다. 좋은 논문을 휴스턴에서 계속 내자, 한국의 몇몇 대학에서 이직 제안을 해왔다. 거절했다. 그런데 모교인 서울대학교 약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 휴스턴에 있는 다른 좋은 대학도 부교수 승진과 연구비 지원을 약속하며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다. 서울대학교로 옮기지 않았으면 그 대학으로 옮겼을지 모른다.
서울대로의 이직을 고민하다가 박사후연구원 시절 보스였던 첸동 박사를 찾아가 상의했다. 첸동 박사는 “무조건 가라”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신은 연구비(R01)를 하나 받았고, 그래서 지금은 좋을지 모른다. 이거 5년짜리다. 앞으로 2~3년 지나면 다음 연구비를 어떻게 따낼까 속이 시커멓게 탈 거다. 그러지 말고 한국으로 가라”라고 말했다. R01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 이름이다. 미국 과학자 연구비는 NIH와 미국 과학재단(NSF) 두 군데에서 주로 나온다. 미국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과학자 연구비에서도 나타난다. 잘하는 과학자, 즉 ‘빅 가이(Big Guy)’는 연구비가 넘치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과학자는 R01을 따지 못해 박봉에 시달린다. 정 교수는 “미국에서 연구원 5명 정도를 유지하려면 R01 연구비를 두 개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연구비 신청 후 R01 하나를 딸 수 있는 커트라인(payline)은 10% 미만으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라고 말했다.
첸동 박사는 정 교수가 전직을 고민할 때를 전후해서 중국 칭화대학교로 떠났다. 칭화대는 베이징대와 함께 중국 최고 명문 대학이다. 그는 칭화대 의과대학 학장으로 일한다. 그는 당시 정 교수에게 “칭화대로 오라. 연구실을 꾸리는 비용으로 100만달러(약 11억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첸동 박사는 칭화대로 가면 면역학연구소를 만들 예정이었다. 그러려면 면역학자 20명을 스카우트해야 했다.
서울대에 자리 잡은 배경
정 교수는 결국 서울대를 택했고, 2014년 봄 학기에 돌아왔다. 그리고 텍사스에서 끝내지 못한 심혈관계질환 연구를 마무리했다. 이 연구는 2018년 학술지 ‘네이처면역학’에 논문으로 냈다. 정 교수는 “고지혈 쪽이 기대보다 이런저런 프로젝트가 발굴이 잘되어 성과를 냈다”라고 말했다. 외부 환경이 고지혈인 경우,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첫 면역세포인 수지상세포는 인터루킨-27이라는 물질을 많이 생산한다. 이 물질은 T세포가 Tfh세포로 분화하도록 하고, Tfh는 또 자가항체를 만들어낸다. 자가항체는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 발병으로 이어졌다. 결국 정 교수 그룹은 고지혈(심혈관계질환)과 면역계질환(루푸스)이 연관성이 있다는 걸 설명해냈다. 또한 알레르기 면역에 대한 연구로 2018년 JACI(알레르기 및 임상 면역학 저널)에 두 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JACI는 알레르기 분야에서 제일 좋은 학술지다. 귀국 후 이런 성과를 계속 내면서 정 교수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는 2020년 한국연구재단이 개인 연구자에게 주는 최고의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인 ‘리더연구사업’(옛 창의연구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는 걸로 나타났다. 리더연구사업은 9년 프로그램이며, 연 8억원을 지원받는다. 리더연구사업은 딴 거 하지 말고 한 우물만 깊게 파는 것이 목표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리더연구사업의 연구 목표는 이렇다. 기존에는 면역세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고지혈일 때 자가면역질환을 촉진시킨다는 연구를 했다. 이제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면역세포 안의 환경, 즉 지질, 콜레스테롤이 적거나 많은 경우에도 면역세포의 기능이 바뀌는지를 밝혀보려고 한다. 정 교수는 “가설에 맞는 면역세포가 한두 개 있고, 그걸 바탕으로 좀 더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가려고 한다. 면역세포 안의 지질 대사가 중요하다는 가설이다”라고 말했다.
T세포는 림프절에서 뭘로 분화할지 운명이 결정된다고 했다. 림프절에서 T세포가 분화하는 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정 교수는 “그런데 현장에서 범인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라며 “현장에서 T세포가 다른 T세포로 운명이 바뀔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현장 부분이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 부분을 ‘조직 면역’이라고 했다. 림프절에서의 연구보다 조직 면역 연구가 더 어렵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취재를 시작할 때 정 교수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인터뷰할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취재를 마칠 때는 “지금까지 많이 했다고 내내 자랑했는데, 이렇게 말해놓고 앞으로 성과를 못 내면 어쩌나 싶다”라고 말했다. 겸손한 학자라고 생각했다. 원고를 쓴 후 틀린 곳이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 보냈더니 “너무 위인전처럼 쓰셨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준석 선임기자ㅣ주간조선 2022.03.25
/ 2022.04.06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