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회전하지 않으면서도 회전하는 효과 '스핀' 개념의 탄생 (2022.04.01)
[사이언스N사피엔스]회전하지 않으면서도 회전하는 효과 '스핀' 개념의 탄생 (daum.net)
[사이언스N사피엔스]회전하지 않으면서도 회전하는 효과 '스핀' 개념의 탄생
양자역학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립자들이 '스핀'이라는 물리량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스핀은 자체의 회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입자가 회전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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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회전하지 않으면서도 회전하는 효과 '스핀' 개념의 탄생
양자역학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립자들이 '스핀'이라는 물리량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스핀은 자체의 회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입자가 회전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전자가 스핀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전자가 진짜 지구처럼 회전하지는 않는다. 흔히 원자모형을 생각하면 마치 태양계처럼 원자핵이 한가운데 있고 전자가 핵 주위를 공전하면서 전자 스스로도 자전하는 심상을 갖게 마련인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전자 자체는 그 어떤 하부구조도 없는 점입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스스로 돌거나 할 여지도 없다. 설령 전자가 어떤 크기를 갖고 회전한다 하더라도 그 회전하는 선속도가 광속을 능가하기 때문에 상대성이론과 충돌한다. 전자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관념은 고전적인 유물이다. 실제 전자는 그렇지 않다. 스핀은 실제 회전하지는 않지만 회전의 효과를 나타내는, 입자의 내재적으로 고유한 물리량이다.
스핀의 개념이 도입된 출발점은 역시나 원자가 방출하는 빛스펙트럼이다. 20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896년 네덜란드 레이든대 피터르 제이만 교수는 소듐 원소의 방출 스펙트럼을 외부 자기장에 노출시켰을 때 원래의 스펙트럼이 두텁게 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후 카드뮴 원소로 비슷한 실험을 통해 제이만 교수는 외부 자기장에 따라 스펙트럼이 두텁게 퍼진다기보다 여러 개의 선 스펙트럼으로 갈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제이만 효과'라 부른다. 이때는 아직 전자도 발견하기 전이라 원자의 내부구조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제이만의 발견에 대해 그의 레이든대 스승이며 19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던 헨드릭 로렌츠가 고전역학의 틀 안에서 제이만의 결과를 설명했다. 로렌츠에 따르면 원자 속에서 전기를 띤 입자가 외부 자기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빛을 복사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제이만 효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때 그 입자의 전하량과 질량의 비율이 제이만 효과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로렌츠의 분석에 따르면 그 입자는 음의 전기를 가졌고 수소원자보다 훨씬 가벼워야 했다. 물론 그 입자는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자이다. 하지만 로렌츠의 분석은 헨드릭 로렌츠가 조지프 존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기 전이었다. 제이만과 로렌츠는 190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제이만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제이만 효과를 연구했다. 그 결과 원자의 스펙트럼이 갈라지는 양상이 상당히 복잡함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 스펙트럼선이 셋으로 갈라지는 경우는 로렌츠의 고전역학적인 접근으로도 잘 설명이 되었다. 이 경우를 정상 제이만 효과(normal Zeeman effect)라 부른다. 그러나 다른 원소들에서는 스펙트럼이 넷 또는 그 이상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로렌츠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를 이상 제이만 효과(anomalous Zeeman effect)라 부른다.
이상 제이만 효과는 20세기 초반 닐스 보어가 양자역학적인 개념으로 원자모형을 완성했을 때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보어 모형이 고전역학과 단절했음은 분명했다. 원자 속 전자는 에너지 준위에 따라 안정된 궤도에 머물렀고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할 때 그 에너지 차이만큼이 빛으로 방출된다. 보어는 전자가 차지하는 안정된 궤도, 또는 에너지 상태(또는 전자껍질)를 주양자수라 부르는 정수로 규정했다. 주양자수는 보통 n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주양자수만으로는 제이만 효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한편 보어의 원자모형이 나올 무렵 독일의 요하네스 슈타르크는 자기장이 아닌 전기장에 의해서도 원자의 스펙트럼이 갈라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를 '슈타르크 효과'라 부른다.
독일의 아르놀트 조머펠트는 보어의 원자모형에 새로운 양자수를 둘 추가해 슈타르크 효과와 정상 제이만 효과를 설명할 수 있었다. 조머펠트가 도입한 새로운 양자수는 k(부양자수, 이후로는 주로 l을 쓴다)와 m(자기 양자수)이었는데 k는 입자의 각운동량의 크기이고 m은 각운동량의 성분에 해당한다. 각운동량이란 회전하는 물체가 갖는 운동량으로, 고전적으로는 입자의 질량과 속도 및 회전반경의 곱으로 주어진다. 고전 전자기학에서는 각운동량을 가진 전자가 외부 자기장 속에서 움직일 때 전자의 각운동량과 외부 자기장의 곱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제이만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각운동량과 관계가 있는 새로운 양자수를 도입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원자의 세계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아서 k와 m값이 1만큼 더 크거나 작은 값에 대해서만 전이(m값은 변화가 없는 경우도 가능)가 일어났다. 이를 선택규칙이라 한다. 그러나 조머펠트의 새로운 양자수로도 이상 제이만 효과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새로운 양자수를 도입해서 재미를 봤던 조머펠트였기에 거기에 다시 하나의 양자수를 더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1920년에 조머펠트는 네 번째 양자수 j와 새로운 선택규칙을 도입했다. 새로운 양자수의 기원은 정체불명이었고 오직 실험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했다. 다만 이 양자수는 전자가 여러 개 있는 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원자 내부의 복잡한 ‘숨은 회전’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양자수 j를 ‘내부 양자수’라 불렀다.
이듬해 독일 튀빙겐대 알프레트 란데는 m과 j가 반정수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정수란 정수에 1/2이 더해진 분수로 1/2, 3/2 등을 말한다. 또한 란데는 조머펠트의 숨은 회전이 원자 중심부에 몰려 있는 전자의 각운동량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자 속에 여러 개의 전자가 있는 경우 하나의 전자가 가장 바깥쪽 궤도에 있고 나머지 전자들은 안쪽 궤도를 다 채우고 있다. 이때 가장 바깥쪽 전자를 원자가 전자라 하는데, 이 전자와 안쪽의 중심부 전자들의 모종의 상호작용이 이상 제이만 효과를 유발한다고 기대할 수 있다.
1922년에는 독일의 오토 슈테른과 발터 게를라흐가 은 원자 빔을 이용해 보어-조머펠트의 이론검증에 나섰다. 전기를 띤 전자가 각운동량을 가지면 자기 모멘트를 가지며 일종의 자석처럼 행동한다. 이런 빔을 균질하지 않은 외부 자기장 속으로 통과시키면 빔 속의 미세한 자석(원자)들이 처음에 무작위로 분포해 있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불균질한 외부자기장을 따라 원자들이 연속으로 분포할 것이다. 그러나 보어-조머펠트의 모형에 따르면 전자의 각운동량이 불연속적으로 양자화 돼 있으므로 원자 빔이 특정한 방향으로만 갈라질 것이다. 슈테른과 게를라흐의 실제 실험결과 원자 빔은 두 개의 가닥으로 갈라졌다. 이는 보어-조머펠트 이론에서 예측한 이른바 ‘공간 양자화’를 증명한 것으로 보였다. 슈테른과 게를라흐도 자신들의 실험이 이를 보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잘못된 해석으로 드러났다.
1924년 영국의 에드먼드 스토너는 주양자수 n이 주어졌을 때 그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전자의 개수는 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2라는 숫자가 이후 양자역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양자수가 주어지면 거기에 따라 각운동량의 크기를 나타내는 부양자수가 가질 수 있는 값의 범위가 정해지고, 부양자수에 따라 다시 자기양자수의 가능한 값이 정해진다. 이로부터 주양자수 n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궤도수를 구하면 의 결과를 얻는다. 그런데 실제 주기율표 원소들로부터 전자껍질을 꽉 채운 전자개수를 살펴보면 각 궤도마다 전자가 두 개씩 들어가야 한다.
‘물리학의 양심’이라 불렸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볼프강 파울리는 2배의 기원이 전자 각각의 비고전적인 고유한 속성으로 파악했다. 또 내부양자수 j가 안쪽 궤도의 전자와 관련된 숨은 회전이 아니라 반정수 값을 가지면서 전자 각각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파울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궤도에 전자는 내부양자수 j로 구분되는 오로지 ‘두 개만’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말하자면 주어진 궤도 속에 이미 전자가 차지할 자리가 꽉 찼음을 뜻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파울리의 배타원리'이다. 이미 자리가 다 차 있으면 새로운 전자는 그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내부양자수 j에 획기적인 해석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독일계 미국 물리학자인 랠프 크로니히였다. 크로니히는 내부양자수가 조머펠트가 주장했던 숨은 회전이라기보다 전자 자체의 회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는 마치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가 자전하는 것과도 같다. 앞서 말했듯이 전기를 띤 입자가 각운동량을 가지면 자기모멘트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외부자기장과의 상호작용으로, 자기모멘트가 외부자기장과 같은 방향인가 다른 방향인가에 따라 에너지 상태가 갈라지게 된다. 이는 곧 이상 제이만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파울리는 전자가 회전한다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전자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 회전체라는 것도 거추장스러운데다 회전선속도가 광속을 훨씬 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크로니히가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잠시 독일로 돌아와 튀빙겐대에서 란데와 공동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파울리가 튀빙겐대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파울리는 크로니히의 아이디어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이를 계기로 크로니히도 전자의 자전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다.
크로니히 이후 10개월 쯤 지났을 무렵 네덜란드 레이든대의 젊은 물리학자였던 새뮤얼 호우트스미트와 조지 울렌벡은 크로니히와 똑같은 결론, 즉 네 번째 양자수가 전자의 자전에 의한 각운동량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우여곡절 끝에 1925년 11월에 논문을 출판했다. 이들의 논문은 학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파울리는 여전히 부정적이었으나 보어는 큰 관심을 보였고 ‘스핀(spin)’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호우트스미트와 울렌벡의 논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스핀에 의해 수소 스펙트럼이 갈라지는 정도는 실험값보다 2배 큰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문제는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 중이었던 르웰린 토머스가 해결했다. 토머스는 상대론적 효과를 반영한 계산에서 ‘토머스 절반’이라 불리는 1/2값이 추가로 필요함을 밝혔다.
크로니히는 아쉽게도 스핀의 발견자라는 명성을 놓치고 말았다. 항간에는 파울리가 그리 심하게 부정적이지 않았다면 스핀의 주인공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들 한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스핀이란 입자의 고유한 내재적인 성질로서 실제 전자 따위가 회전하지는 않는다. 회전하지 않으면서도 회전하는 효과를 내는 물리량이 스핀이다. 전자의 스핀은 1/2로서, 그 성분이 +1/2인 상태와 -1/2인 상태 두 가지만 가능하다. 스핀은 지극히 양자역학적인 개념이다. 호우트스미트와 울렌벡의 논문이 나온 것은 슈뢰딩거 방정식이 나오기도 전이다. 두 사람은 1927년 나란히 박사 학위를 받았다.
※ 참고자료
-이강영, 《스핀》, 계단.
-짐 배것, 《퀀텀스토리》, 반니.
-Pauli, W. (1925). "Über den Zusammenhang des Abschlusses der Elektronengruppen im Atom mit der Komplexstruktur der Spektren". Zeitschrift für Physik. 31 (1): 765–783.
※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글=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ㅣ동아사이언스 2022.02.17
/ 2022.04.0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