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아인슈타인 못넘은 로런츠, 고집·착각 벗어나야 (2022.03.12)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아인슈타인 못넘은 로런츠, 고집·착각 벗어나야 (daum.net)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아인슈타인 못넘은 로런츠, 고집·착각 벗어나야
집 안 정리 중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오르골을 발견했습니다. 예상대로 오래 방치돼서 움직이지 않더군요. 오르골은 대부분 태엽을 이용한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전기모터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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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아인슈타인 못넘은 로런츠, 고집·착각 벗어나야
특수상대성이론 핵심 찾은 로런츠, 아인슈타인에 가려 조력자 기억
타미플루 만든 방사광가속기도 로런츠의 논문 거대장치로 구현
배움 없는 역사의 반복 끊어야 코로나와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어
집 안 정리 중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오르골을 발견했습니다. 예상대로 오래 방치돼서 움직이지 않더군요. 오르골은 대부분 태엽을 이용한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전기모터로 작동하는 것이어서 바로 전지를 갈아 끼웠습니다. 그런데도 오르골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모터에 문제가 있다는 걸 금세 알게 됐죠. 모터는 복잡한 전자부품과 달리 자석·전선코일로만 만들어진 간단한 장치입니다. 복잡했다면 내 무능함을 탓하겠지만 단순함의 멈춤은 내게 무력감만 주더군요. 사실 이 장치는 작고 단순하지만 그 모습에 비해 거대한 힘을 지닌 존재이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과학 시간을 떠올리면 플레밍의 왼손이나 오른손 법칙이 생각납니다. 검지와 중지, 엄지를 자기력과 전류, 힘에 대입해 각각의 영향과 관계를 설명한 법칙입니다. 이는 영국의 전기공학자 존 앰브로즈 플레밍(1849~1945)이 전기기술자가 전자기학의 물리적 원리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손가락을 이용해 설명한 것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원리를 찾아낸 사람이 따로 있는데 설명을 고안한 사람이 더 유명해진 경우라는 점입니다. 원리는 전하를 띠고 있는 입자, 그러니까 전자와 같은 대상이 자기장이나 전기장 안에서 받는 힘에 대해 정의한 것이죠. 이는 네덜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안톤 로런츠(1853~1928)가 당시 전자기학 이론을 발전시켜 이 힘까지 유도했다고 해서 '로런츠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플레밍의 법칙은 이론을 배경으로 자기장과 전류가 이루는 각이 직각인 경우에 한정된 법칙입니다. 그래서 세 손가락을 펴서 서로 직각으로 배치해 설명했죠. 물론 로런츠가 여기에 그쳤다면 모터의 원리를 정의한 과학자로만 기억됐을 겁니다. 하지만 로런츠 덕에 물질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빛을 방출하는 원인은 전자임이 밝혀지고 전자가 실존하는 입자라는 것도 확실해졌죠. 그는 제자 피터르 제이만(1865~1943)과 함께 '방사에 대한 자기장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19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로런츠라는 과학자보다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을 더 잘 압니다. 마찬가지로 로런츠의 법칙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더 유명합니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 물리량이 아니라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게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마주 보고 달리는 두 자동차에서 상대방의 속도는 분명 자신의 속도와 상대의 속도를 더하는 방법인 상대성의 원리로 계산됩니다. 하지만 대상이 자동차에서 빛으로 바뀌면 이런 상대성의 원리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달리는 방향이든 반대 방향이든 지나는 빛의 속도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상대성 이론과 광속불변의 원리가 상충한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당시 많은 물리학자가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성 원리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 상황에서 둘 모두를 원리로 채택합니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서로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두 원리를 화해시킨 유일한 인물이라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사실 과학은 한 사람만의 독보적 능력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과학계의 누적된 힘이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두 원리에서 연역 가능한 수학적 관계를 어렵지 않게 찾아낸 것은 로런츠가 과거에 유도한 관계식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로런츠 변환'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핵심인 셈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로런츠 변환에서 역사에 남을만한 놀라운 결론들을 도출해낸 겁니다. 왜 로런츠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근접하고도 결국 귀착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는 위대한 발견의 조력자로만 남게 됐을까요. 답을 알기 전에 다른 질문부터 던져봅니다. 상대성 원리 같은 물리학적 이론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여기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염병으로 오르골의 모터처럼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정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일상은 기약이 없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던 모든 조각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정지계처럼 움직이지 않는 기준이 됐죠. 바이러스 감염병에서 치료제와 백신은 질병 확산을 통제합니다. 지금은 마땅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오로지 예방과 면역에 의지해야 하니 인류의 활동이 멈춘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 많은 감염자는 의료기관에서 어떤 처치를 받고 있을까요. 대개 증상 완화를 위한 치료입니다.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항바이러스제뿐입니다. 지금 같은 대유행기에는 적합한 치료제를 개발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항바이러스제는 인체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가장 큰 임무인 복제를 막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치료제입니다.
신종플루 유행 당시를 떠올려 보죠. 당시 감염자가 수백만 명이나 발생했음에도 지금과 달리 대규모 피해를 막을 수 있던 것은 '타미플루'라는 치료제 덕이었습니다. 타미플루는 어떻게 이른 시간 안에 만들어졌을까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세포의 단백질 결합 구조가 밝혀지면서 바로 치료제 개발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 외피에 존재하는 당단백질과 인간 세포의 수용체가 서로 인식하면 세포는 세포막으로 바이러스를 삼킵니다. 이 과정이 감염이고 세포 안에서 자신의 유전자 물질을 복제합니다. 복제 이후 생성된 바이러스는 세포를 파괴하고 탈출하죠.
타미플루는 당단백질인 효소에 결합해 바이러스 탈출을 방해합니다. 결국 증식된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지 못하는 사이 몸의 면역 시스템이 시간을 법니다. 최종적으로 현장에 도착해 감염 세포를 죽이도록 하는 게 타미플루의 역할입니다.
인류는 단백질 분자가 세포와 반응하는 동작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공신이 있습니다. 바로 방사광 가속기입니다. 당시 제약사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싱크로트론 방사광 가속기로 단백질 구조와 결합 원리를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방사광 가속기는 무엇일까요. 앞서 로런츠의 노벨상 논문에도 방사라는 단어가 있으니 왠지 그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방사광 가속기는 일종의 빛 공장입니다. 방사광 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근접해 가속합니다. 이때 상대성 운동을 하던 전자가 전자기장에 의해 로런츠의 힘의 원리로 속력과 방향이 바뀝니다. 그러면 횡방향의 가속을 받은 전자의 궤도가 휘면서 X선이라는 방사광 형태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겁니다. 로런츠의 논문이 거대 장치로 구현된 셈입니다. 이 X선 빛으로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물리ㆍ화학적 구조와 반응을 영화처럼 볼 수 있다는 거죠.
타미플루 개발은 세포막 바깥에서 작용하는 병원성 단백질이 어떻게 세포막과 반응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방사광 활용은 이 분야뿐 아니라 모든 과학과 산업에 필수적입니다.
물론 국내에도 방사광 가속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전 포항의 한 대학에 설치된 가속기는 이미 포화 상태인 데다 빛의 품질이 좋지 않아 사실상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선진국의 방사광 가속기 대다수는 고품질 빛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런 장치가 8개나 있죠. 일본이 과학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기초과학이 견고한 덕이죠. 지금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코로나19의 실체를 알아내고 있을 겁니다.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방사광 가속기의 존재와 가치는 상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상식이 무시된 채 신형 방사광 가속기가 설 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재 로런츠의 업적은 위대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자에게는 상식인 상대성 원리를 신뢰하지 못해 특수 상대성 이론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온 뒤에도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상식을 외면하고도 강고하다고 착각하는 현실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로 포장된 자본과 이윤은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됐습니다. 모든 것은 반성 없이 그저 불확실한 미래만 보고 달렸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방사광과 같은 X선으로 현 인류의 문명을 비추고 상식적이지 않던 진실과 인류의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전염의 시기가 끝나면 일상의 회귀와 함께 소멸할지 모르는 진실이죠. 상식의 소멸과 배움이 없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모든 것이 멈춰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 있습니다.
글=김병민 한림대학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ㅣ아시아경제 2020.05.06
/ 2022.03.12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