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난희에게/김옥종 (daum.net)
난희에게 / 김옥종
감기를 옮길까 봐
등 돌린 당신의
폐에서
순록 떼의 마른 발자국
소리 들립니다
옮겨버리면 얼른 낫는다고 해서
입술로 덮습니다
차갑게 사랑하고
뜨겁게 헤어지고픈
그런 밤이었습니다
난희. 시인의 연인은 이름이 곱다. 이름에서 가을밤 숲 냄새가 난다. 환한 달빛 속에 난초 꽃 한 송이 바람에 흔들린다. 어쩌나? 연약하고 고운 연인이 독감에 걸렸다. 등 뒤에서 가만히 껴안으니 연인의 폐에서 순록 떼의 마른 발자국 소리 들린다. 연인의 입술 위에 시인은 입술을 포갠다. 대저 시인에게 입술의 용도란 이러한 것. 전장포 밤바다에서 처음 만나 입맞춤할 때 쏟아지던 달빛의 윤슬. 반짝반짝 빛나던 젖새우들의 춤. 함께 지낸 세월의 이끼 속에 피어나는 지순한 꽃 한 송이여. 시와 삶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조폭과 격투기 선수의 이력을 지닌 시인이 고향 이름을 딴 식당에서 요리를 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20.09.18
/ 2022.05.19(목)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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