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시인] 이천에서 봄비가 보내온 詩

[초대수필] '항아리' 김동인(김정인) (2021.12.05)

푸레택 2021. 12. 5. 20:25

항아리 / 김동인(김정인)

볕이 잘 드는 곳에 항아리가 옹기종기 붙어 서 있다. 큰 항아리에는 간장이 가득하고 중간 항아리는 된장이, 작은 항아리엔 맛스러운 고추장이 소복이 쌓여 있다. 그 옆으로 소금 항아리 깻잎장아찌 항아리...

집집마다 서열이 있듯이 쓰임이 많고 중요시 여기는 항아리는 안전하고 푸기좋은 위치에 자리를 하고 있다. 김치 냉장고가 없던 시절 항아리를 땅 속에 묻고 김치를 넣어 겨울 저장음식으로 먹었다.

추운 겨울 어머니가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를 퍼서 밥상에 올리면 누가 먼저 할것 없이 숟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그것처럼 시원하고 맛있는 음식도 없었다. 항아리의 옹기토에는 공기만 통하는 미세한 구멍이 있어 한 겨울 땅속에서도 김치가 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발효가 되어 맛있게 변하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햇살이 좋은 오후, 항아리 뚜껑을 열고 된장에 하얗게 핀 곰팡이를 걷어 내니 속이 노랗게 보이는 된장이 맛스럽게 익어 있다. 냄새 맡고 금새 모여든 파리가 장독 안에 알을 낳으려고 분주히 날아다닌다.

하지만 모기장처럼 생긴 덮개용 망이 틈을 주지 않고, 게다가 어머니가 든 파리채에 벌써 여럿 파리들이 죽어 나갔다. 정성어린 장들을 지키시려는 어머니는 사명감이 불타시는지 물러서지 않는 파리들과 한동안 사투를 벌이신다.

애쓰고 고생하여 담근 장들을 맛도 보기 전에 파리에게 먼저 내어줄 순 없는 일이다. 항아리에 음식을 담고 정성으로 지키시는 한국 어머니들, 넉넉한 인심과 마음이 둥근 항아리를 닮은 듯하다.

항아리 속 간장은 오랫동안 우리 밥상을 책임질 것이고 된장 고추장도 곧 맛있은 찌개와 국이 되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게 될 것이다. 옛 향취가 묻어있는 건강한 우리의 식문화 그 항아리가 요즘 시대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 2021.12.05 이천에서 보내온 봄비의 글

https://youtu.be/yb_mqKzZhUg

https://youtu.be/d-ZJRZ57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