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조팝나무 김종익, 방동사니 김승기, 물푸레나무의 사랑 김병춘 (2020.04.05)

푸레택 2020. 4. 5. 10:53

 

 

 

 

 

 

● 조팝나무 꽃 / 김종익

 

식장산 한적한 계곡 오르다가

조팝나무 하얗게 핀 군락 만나

왈칵 눈물나도록 반가웠다

어린 시절 누나 등에 업혀 오르내리던

언덕 길에 반겨주던 꽃

오랜만에 만난 누나인 듯

어루만지며 서로 안부 물었다

조밥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던 시절

그 누나 조팝나무꽃 하얗게 어우러진

고개를 넘어 시집가다

자꾸 뒤돌아보면 눈물 짓던

한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한 누나

몇 번 철책선에 가서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그 이름 불렀었지만 메아리 되돌아오고

눈물을 삼키느라 목이 메었는데

오늘 조팝나무 꽃에 소식 전해준다

누나 등에 업혀 응석부리던 나도

이젠 머리 하얀 조팝나무 되어 서 있다

 

● 방동사니 / 김승기

 

구십 평생을 모질게 살으시고도

아무 보람도 찾지 못하셨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

그 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방동사니의 뿌리가 왜 그리도 질긴지를

뽑힐수록 질겨지는 방동사니의 억척스러움을

갈수록 무성해지는 방동사니의 끝없는 생명력을

꽤나 크게 피워 올려도 꽃이라 인정받지 못하는

방동사니의 허탈함을

졸병시절

연병장 둘레에 한도 끝도 없이 돋아나는 방동사니의

뽑아도 뽑아도 뽑히지 않고 그 질긴 줄기만 끊어지던

방동사니의 슬픔을 알지 못했습니다

햇빛 뜨거운 것은 알면서, 나 허리 아픈 것은 알면서

그토록 원망스럽던 방동사니의 원망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꽃을 꽃이라 인정받지 못하는

방동사니의 슬픔을

 

● 물푸레나무의 사랑 / 나병춘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40년이 걸렸다

물푸레나무는 길가에 자라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얼마나 바랬을까

 

중학교 생물 선생님은 허구헌 날

지각을 일삼는다고 회초리를 후려쳤는데

그것이 물푸레나무라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늦가을 도리깨질할 때마다

콩, 녹두, 참깨를 털어내면서도

그게 물푸레나무라 얘기해주지 않았다

 

아버지 선생님 탓은 안할란다

이 땅에 살면서 이 하늘 아래 꽃을 피우는

나무와 들꽃을 사랑한다면서도

물푸레나무를 아는데 이렇게 오래토록 지각하였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

이 땅의 시어머니는 며느릴 호되게 다그치면서도

그 풀꽃이름들 하나하나 이쁘게 부르면서

넌 잡초야, 구박하지 않았다

 

/ 2020.04.05 편집 택..